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担任教師に「死ね」と言われて育ちました|i

自分はよく教師職の事を 「世界で一番理不尽な仕事」 あるいは 「世界で一番ゴミみたいな仕事」 と評しています。 何故「世界で一番理不尽な仕事」かと言うと 大人の身分でありながら 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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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흔히 교사직의 일을





「세계에서 가장 불합리한 일」



혹은



「세계에서 가장 쓰레기같은 일」



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세계에서 가장 불합리한 일」이냐 한다면

어른의 신분에 있으면서
자신들같은 빌어먹을 쿠소가키들의 상대를 1년내내 해줘야만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세계에서 가장 쓰레기같은 일」이냐 한다면

어른 주제에 사회에 나간 적도 없으면서
우리들 쿠소가키에 관해, 사회의 것을 잘난 척 강석을 늘어뜨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학생이었던 시절은 되돌아보면,
적어도「정직한 학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해서 유리창을 깨고 다니는 불량이었던 것은 아니었고,
「학교가 정한 룰」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자신이 다녔던 학교는
소위 「깡시골의 진학교」였습니다
진학교: 공립 고등학교나 사립 고등학교를 불문하고, 대학·단기대학으로의 진학 실적이 높은 학교

이건 자론입니다만,
「깡시골의 진학교」일수록, 교칙에 관해 엄격해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도쿄 등 도시의 진학교라 하면

「〇〇대학, ○○고등학교로부터의 진학률〇%!!」

등과 같은「진짜 인생 설계로서의 메리트」를 학교의 판매로서 내세울 수 있는데,
자신과 같이 시골 출신이라면 알아줄지도 모릅니다만,
이쪽의 진학률따위는 기껏해봤자 전부 판명나있습니다, 쓰레기입니다.

실제로 자신의 고향에 있는 어떤 진학처는 「똥통肥溜め, 의역」이라고 불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똥통」에 진학하거나, 그냥 취업하는 인간이 대부분입니다.

허나 학교라는것도 비지니스, 부모님으로부터 학생을 모아 돈을 벌어야만 합니다.

그런 상황에, 진학교라고 자칭해놓고서는
부모님들에게 PR할 수 있는 것은
필연적으로 진학률이 아닌 「풍기 올바른 교풍」뿐 만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깡시골의 진학교의 교풍은, 자신이 있었던 곳이 그랬었기 때문인지, 개같이 지독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신은 남달리 자의식이 높았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지킨다」라는 것에 옹고집이 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찌해도 짧은 머리를 받아들이지못했기 때문에,
남자는 두발 5cm이하라는 규칙 속에서(여자는 잘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스커트 길이를 자주 한탄했던 인상이 있습니다), 헤어핀이나 클립을 구사하여 두발검사를 통과하거나 (그 영향인가 지금도 자신의 머리칼을 만지는걸 좋아합니다)

무슨일이 있어도 과제를 하기 싫었기 때문에,
비품창고에서 선배의 전년도 제출물을 훔쳐서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방송에서는 가정 과목의 한건만 얘기하고 있었습니다만, 사실은 부단히 하고있었습니다(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해도 어쨌든 현내 제일의 진학교, 잘 자란 아이들이 많아, 주위에 자신들과 같은 것을 하고있던 애는 없었습니다.
가면 안되는 곳에 못 참고 가버리거나, 학교가 금지하고있는것을 무시하는 열등생은 자신들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처음으로「자신들」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만,
당시 자신은 줄 곧, 2명의 악우와 함께 지냈습니다.


둘 다 자신과 닮은 듯한 성격으로 자기주장을 할발로 장소를 찾고있었기에, 필연적으로 사이 좋게 되어버려(사이가 좋아졌다 가 아닌, 사이가 좋게 되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져보면 자신의 인생이 이런건 걔네들 때문이 아닌가), 자신같은 사회부적응자가 3명이나 있으니 당연히 행위가 에스컬레이트 되어버렸습니다.

학생의 신분이기에 귀여운 것들이나, 교내에서 도박을 대유행시켜버리거나(구체적으로 적지 않는 건 용서해주세요), 개인적으로 하고있었기에 못 본 채되고 있던 것들도,그러던 중 결국 교사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어져버렸습니다만, 이런 저런 일들로 자신은 교사진으로부터는 미움받고있는 쪽이 많았는데요
특히 「담임교사」로 부터는 지독하게 미움받고있었습니다, 이건 자신 한명의 얘기입니다.


자신들 3명중,


한명은 운동부의 에이스였습니다.


또 한명은 설교중에 눈을 뒤집어 까곤 하는 키치가이였습니다(영문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진짭니다, 뒤에 적겠습니다)


그 중「어찌저찌해도 본성은 진지함」이었던 자신은 스트레스의 쓰레기통으로서 딱 좋았던 거겠죠. 눈엣가시가 되는 것은, 항상 자신 하나였습니다.




「아니ㅋㅋ, 네가 나쁜짓을 하고 있으니까 혼나는건 당연하잖아」




맞습니다, 반박할 필요도 없이 그 대로입니다만,
나쁘게 눈에 띄는 만큼, 다른 클래스메이트나 일부 선생님들로부터 수수께끼의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또한 담임교사님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 되어, 언젠가부터 학교내의 모든 악의는 자신에게 향하게되었습니다.


이건 가벼운 이야기의 쪽이 전해지기 쉬울것이라 생각하기에 가벼운 예를 들자면


자신의 학교는 급식을 반납할 때, 바구니 안에 넣는 접시의 위치가 정해져있었습니다.

어느날 급식이 끝난 후, 자신은 담임교사님께 복도로 불려가 1시간동안 설교를 들었습니다.
담임교사님이 말하기론 「접시의 배치가 달랐다」고 합니다.



그날의 담당은 자신이 아닌 다른 아이였습니다.



허나 담임교사님이 말하기론



「네가 제대로 보고있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거아냐」



????????????????????????????????



지금 적으면서도 의미를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 이거로 한시간동안 들볶아졌습니다.
누군가의 성적이 떨어지면 자신이 불려지고, 학교 내에서 문제가 생기면 관계없는 자신이 불려지는, 이런 느낌이 담임교사님과 관련될 때의 자신의 일상이었습니다.



참고로 이건 여담입니다만, 그 때 자신과 또 한 사람, 키치가이 쪽의 친구도 불려져있었습니다.
1대2의 상황에서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담임교사님은 항상 자신 쪽을 향해 얘기하고있었습니다.


뭔데 이 상황 하고 생각해 살짝 옆을 보니, 키치가이 쪽의 친구는 눈을 뒤집어 깐채로 놀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럼 나밖에 화낼 가치가 없구나. 뭐 됐어.



어찌저찌해 인항적으로 학교내에서 뭔가가 일어나면 불려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이쪽은 이쪽대로「이 개 망할할망구 뭐냐고 시발 쳐 죽어」 라고 생각하며 지냈기 때문에 딱히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괴롭지 않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어찌저찌 말하자면, 근처에 다른 사람이 있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을의 일입니다

학급회에서 합창 콩쿠르(어레, 합창 콩쿠르는 대개 가을이죠? 우리만 그런거 아니죠?)의 역할을 정하고 있던 때입니다.


자신은 그 때 지휘자를 하고싶었던 것입니다


뭐어 학생의 합창 콩쿠르의 지휘자라는 건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인기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입후보한 인간은 자신 이외엔 없었고, 클래스메이트도「시윤이라면 좋아」라며 호의적으로 찬동해주었습니다.



「다들 그걸로 돼!?」



라며 목소리를 높인 인간이 딱 한명 있었습니다.


담임교사님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지고있는 클래스에서 혐오하는 인간이 눈에 띄는것을 용서할 수 없었던 거겠죠,

「정말 좋은지, 다들 다시 생각해」

라고 5번 확인되었습니다.

클래스메이트는 자신에게 호의적으로「상관없어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콧대 높아졌습니다, 그때는 담임교사님에게의 마운트로 텐구콧대가 높아진다는 뜻였을지도 몰라요.

무척이나 불쾌한 듯한 얼굴을 하고있었던 것을 기억하고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날의 HR홈룸, 담임수업중에 불려졌습니다





「넌 남으세요.」











방과후, 노을이 비치는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단 둘이


「지휘자를 사퇴하라」고 3시간 몰아붙혀졌습니다.


「다들 다른 입후보立教補, 오타가 없었으니까 OK했을 뿐이야」


「네가 할 수 있을 리 없어」


「망쳐버릴 거야」



지금까지는 교무실에 불려가든 주변엔 다른 교사도 있었습니다.


단 둘이 몰아 붙혀지는건 이게 처음이었습니다.


상대도 에스컬레이트된 것이겠죠


「너같은 애는 방해니까 죽는 편이 나아」


까지 들었습니다.


어른으로부터 진심의 증오를 담은 눈을 향해진것은 이게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은 「하? 할건데요」라고 강세로 돌려주고 있었습니다만


3시간이나 어른에게 진심으로 계속해 몰아붙혀지면 당연히 마음이 약해집니다(당시 중학생)


마지막엔 무서워서 울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의견은 바뀌지않았습니다.


질척질척 울면서「절대로 안 그만둡니다」라 계속해 말했습니다.


그 날은 순찰하러 온 선생님에게 발견되어 종전이 되었습니다.


그 날의 계기로
본격적으로 그 망할할망구를 죽이고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진심이었습니다


자신의 클래스가 고른 곡은 조금 박자를 잡는 법이 어려워서, 당시 음악의 지식이 전혀 없는 저는 무척이나 고생했습니다.

음악실에 가서 음악교사에게 지휘 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음악교사는 「합창 콩쿠르의 지휘를 연습하고 싶다고 한건 처음이야」라고 말해주어(그건 그래, 감사했습니다), 방과후에 개인 수업을 받았습니다.

다른 클래스가 하는 곡을 연구해서, 어떤 게 평가받을까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 무렵부터는 자신이 담임교사님은로부터 상당히 미움받고있는것으로 유명했기에, 앞의 한 건을 들은 학생.
이나 일부 선생님들으로부터는「너 지지마」라는 말을 듣게되었습니다


처음으로 학교행사에 필사였던 1개월이었습니다



이건 자의식과잉일지도 모릅니다만, 자신이 학창생활에서 가장 단결되어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합창콩쿠르 당일

최우수상과 지휘자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분수에 맞지 않게 클래스메이트와 손을 맞잡고 기뻐했습니다.

그때의 자신의 살의와, 담임교사님의 매우 언짢아보였던 얼굴은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하고있습니다.

꼴 좋다.















그 이후에도 그 교사와의 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만

여기까지 오래 읽어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하고
익숙하지않은 문장을 쫓아 피곤하실테고, 이번엔 이 쯤 해두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적어서 뭘 전하고 싶었냐 한다면,






네가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절대로 주변의 부정적인 목소리에 지지않아줬으면 합니다

무언가를 하고싶다고 생각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자신은 지금 「KnightA」라는 아이돌 그룹에서 살고있습니다만

자신이 이런 신상이기에, 갖가지 곳에서 거리낌없이 실컷 말을 들었습니다.


「될 리 없잖아 나대지마 병신 죽어」


같은 말도
세는 것도 귀찮아질 정도로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만을 믿은 결과


너희라면 될 거라고 믿은 결과


믿어주는 너희들과 걸어온 결과


요코하마 아레나도 마쿠하리 멧세에도 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일 또 다시, 새로운 무대에 섭니다.







나는 인생은 부정받는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나 내가 나를 믿고, 너도 나를 믿어주었으니까


부정적인 목소리에 지지않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알고있으니까



앞으로도 나를 믿어줬으면 하고,
네가 하고싶은 것을 부정없이 응원하고싶어, 계속해 긍정하고싶어





그것이 이 글에서 전해지면 다행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줘서 고마워


















너도 지지마